고구려 수도, 현재 지명과 현존 유명 고구려 유적 유물
고구려(高句麗) 수도(首都)와 현재 지명과 유명 고구려 유적 (遺蹟)유물 (遺物)
고구려(高句麗) 수도(首都)
고구려의 수도 변천사와 그에 해당하는 현재 지명을 문단별로 상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1. 첫 번째 수도: 졸본 (기원전 37년 ~ 서기 3년)
고구려의 건국 시조 주몽(동명성왕)이 부여에서 남하하여 처음 자리를 잡은 곳입니다. 이곳은 현재 중국 요령성 환인현(랴오닝성 환인) 지역으로 비정됩니다. 특히 이곳에 위치한 오녀산성은 해발 800m가 넘는 험준한 천혜의 요새로, 건국 초기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하기에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산성 정상에는 평탄한 대지가 있어 초기 궁궐터와 군사 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 장군총:고구려(高句麗) 수도(首都)와 현재 지명과 유명 고구려 유적 (遺蹟)유물 (遺物) |
2. 두 번째 수도: 국내성 (서기 3년 ~ 427년)
제2대 유리왕이 험준한 졸본에서 보다 넓고 경제적 기반이 탄탄한 곳으로 수도를 옮기며 고구려 성장의 발판이 된 곳입니다. 현재 중국 길림성 집안시(지린성 지안) 지역입니다. 압록강 중류 연안에 위치하여 교통이 편리하고 토지가 비옥해 고구려가 대제국으로 성장하는 약 400년 동안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광개토대왕릉비와 장수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장군총 등 고구려의 찬란한 유적들이 대거 밀집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3. 세 번째 수도: 평양성 (427년 ~ 668년)
제19대 장수왕이 남진 정책을 본격화하기 위해 대륙 중심의 국내성에서 한반도 쪽으로 수도를 옮긴 곳입니다. 현재 북한의 평양직할시 지역입니다. 대동강을 끼고 있어 방어에 유리할 뿐만 아니라, 넓은 평야 지대를 갖추고 있어 인구와 물자를 수용하기에 적합했습니다. 평양으로의 천도는 고구려가 한강 유역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동북아시아의 강력한 패권국으로 군림하며 마지막까지 항전했던 역사의 중심 무대가 되었습니다.각 수도는 고구려의 성장 단계에 맞춰 산악 지대에서 점차 넓은 평야와 강을 낀 요충지로 이동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