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 제일 지관(天下 第壹 地官) 정만인(鄭萬人)이 말한 한반도 천하 명당(天下明堂) 두 곳(二處)
천하 제일 지관(天下 第壹 地官) 정만인(鄭萬人)이 말한 한반도 천하 명당(天下明堂) 두 곳(二處)
조선 말기의 유명한 지관 정만인(鄭萬人)이 흥선대원군(이하응)에게 추천했던 '천하 명당' 두 곳에 대해 기술합니다.
이하응이 풍수 지리에 몰두하다 만난 당대 최고 풍수 정만인은 대원군에게 "충청도 땅에 두 곳의 길지가 있는데, 하나는 '만대에 걸쳐 부귀영화를 누릴 자리'이고, 다른 하나는 '2대에 걸쳐 황제가 나올 자리'이다"라고 말하며 선택을 제안했다고 하지요.
1. 만대영화지지 (萬代榮華之地)
위치: 충청남도 보령시(당시 광천) 오서산〇 장소특징: 이곳에 조상의 묘를 쓰면 자손 대대로 끊이지 않고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명당.
〇 대원군의 선택: 흥선대원군은 당장 가문의 세력을 일으키고 권력을 잡는 것이 급선무였기에, 긴 세월의 부귀영화보다는 단기간에 강력한 힘을 얻는 쪽을 선택하며 이곳을 고사했습니다.
2. 이대천자지지 (二代天子之地)
〇 위치: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가야산 (남연군 묘 자리)〇 특징: 2대에 걸쳐 천자(왕)가 태어날 기운을 가진 명당입니다. 정만인은 이곳의 발복이 20년 안에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〇 선택 후 결과: 대원군은 이곳을 선택하여 당시 가야산에 있던 '가야사'라는 절을 불태우고, 경기도 연천에 있던 부친 남연군의 묘를 이곳으로 이장했습니다.
그 후 실제로 그의 아들인 고종과 손자인 순종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되어 풍수지리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일화로 남게 되었습니다.
참고: 이 이야기는 영화 <명당>의 모티브가 되기도 하였으며, 실제 역사가 풍수지리와 얽혀 널리 알려진 사례입니다.
참고: 이 이야기는 영화 <명당>의 모티브가 되기도 하였으며, 실제 역사가 풍수지리와 얽혀 널리 알려진 사례입니다.
흥선대원군과 관련된 풍수 뒷이야기
흥선대원군과 정만인의 이야기는 단순한 명당 찾기를 넘어, 집념과 비극적인 예언이 섞여 있어 풍수 역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으로 꼽힙니다.1. 탑신(塔神)의 경고와 대원군의 호통
남연군의 묘를 쓰기 위해 가야사 터에 있던 5층 석탑을 허물 때의 일화입니다.〇 불길한 꿈: 이장을 앞둔 밤, 대원군의 형제들이 똑같이 "나는 탑신이다. 내 자리를 빼앗으면 너희 4형제가 모두 폭사할 것이니 당장 물러가라!"며 노인이 꾸짖는 꿈을 꾸었습니다.
〇 대원군의 결단: 형제들이 겁에 질려 만류하자, 대원군은 오히려 "나라고 왜 왕의 아비가 되지 못하느냐!"라고 하늘을 향해 호통을 치며 직접 도끼를 들고 탑을 부셌다고 합니다. 권력을 향한 그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지만 , 큰 명당의 주인이 되려면 그 장소의 기운을 제압할만한 담대한 인물이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2. 철저했던 도굴 방지 작업
지관 정만인은 이곳이 명당이지만, 훗날 누군가 탐을 내거나 훼손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〇 석회와 쇳물: 대원군은 이 충고를 받아들여 묘를 쓸 때 석회 300부대를 붓고, 심지어 쇳물까지 녹여 부어 묘실을 거대한 바위처럼 단단하게 굳혔습니다.
〇 오페르트 도굴 사건: 훗날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이 묘를 도굴하려다 실패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밤새도록 파헤쳤지만, 석회와 쇳물 층이 너무 단단해 날이 밝을 때까지 끝내 열지 못했습니다.
3. "빨리 오고 빨리 가는" 명당의 유효기간
정만인은 '이대천자지지'의 기운이 영원하지 않음을 암시했습니다.〇 2대의 한계: 말 그대로 고종과 순종 두 명의 황제를 배출한 뒤에는 그 기운이 다할 것이라는 예언이었습니다. 실제로 순종을 끝으로 조선 왕조와 대한제국이 막을 내리면서, 풍수가들 사이에서는 "명당의 기운이 딱 거기까지였다"는 말이 전해집니다.
〇 보덕사의 건립: 대원군은 명당을 얻기 위해 절(가야사)을 불태운 것에 마음의 짐을 느껴, 아들 고종이 즉위한 후 그 은덕에 보답한다는 의미로 인근에 '보덕사(報德寺)'라는 절을 새로 지어주기도 했습니다.
4. 정만인의 행방
정만인은 대원군에게 명당을 점지해 준 뒤, 대원군의 서슬 퍼런 감시를 피해 자취를 감췄다고 전해집니다.〇 해인사 보물 이야기: 대원군이 그를 곁에 두고 계속 이용하려 하자, 정만인은 "해인사에 있는 '해인'이라는 보물을 가져와야 살을 피할 수 있다"고 속여 경상도로 떠난 뒤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대원군과 정만인의 이야기는 야사와 정사가 섞여 있어 더욱 신비롭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풍수 여가에는 사실로 인지되고 있습니다.
정만인이 말한 충청남도 보령시(당시 광천) 오서산 현재 위치 주소
정만인이 언급한 '만대영화지지'의 장소인 오서산의 현재 주소와 관련 정보를 안내해 드립니다.
오서산은 현재 충청남도 보령시, 홍성군, 청양군의 경계에 걸쳐 있으며, 정만인이 말한 명당 자리는 보령시 쪽 구역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오서산 주요 위치 정보
〇 산 정상부 주소: 충청남도 보령시 청소면 성연리 산31-1 (또는 홍성군 광천읍 담산리 산1번지 일대)〇 국립 오서산 자연휴양림: 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 오서산길 531
ℹ️ 추가 정보
〇 과거 행정구역: 조선 시대에는 광천 지역의 영향권에 있었으나, 현재 '광천'은 홍성군 광천읍으로 분류됩니다. 하지만 오서산의 남서쪽 자락은 보령시에 속해 있습니다.〇 특징: 오서산은 서해안에서 가장 높은 산(해발 791m)으로, 정상에 오르면 서해 바다가 한눈에 들어와 '서해의 등대'라고도 불립니다. 풍수적으로는 서해의 기운이 모이는 곳이자 만대영화의 기틀이 되는 길지로 평가받습니다.
남연군묘 (南延君墓)는 문화재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예산에 위치한 남연군 묘는 역사적, 풍수적 가치를 인정받아 현재 대한민국의 지정 문화재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1. 문화재 지정 현황
명칭: 남연군묘 (南延君墓)지정 종별: 충청남도 기념물
지정 번호: 제80호
소재지: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산5-28
2. 문화재로서의 가치
남연군 묘가 문화재로 지정된 이유는 단순히 왕족의 묘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역사적 사건들의 중심지에 있기 때문입니다.〇 풍수지리학의 현장: 앞서 말씀드린 정만인과 흥선대원군의 일화처럼, '2대에 걸쳐 황제가 나오는 명당'이라는 풍수적 신념이 실제 역사(고종의 즉위)로 이어진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〇 오페르트 도굴 사건의 무대: 1868년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통상을 요구하며 이 묘를 도굴하려 했던 사건은 조선의 척화비 건립과 천주교 박해를 더욱 심화시킨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묘역 주변에는 당시 도굴에 저항했던 흔적과 역사적 기록들이 남아 있습니다.
〇 가야사 터 유적: 원래 이 자리는 고려 시대의 큰 사찰인 '가야사'가 있던 곳입니다. 묘 주변에서 발견되는 석등이나 기와 조각 등은 불교 유적과 유교적 묘제가 공존하는 독특한 양상을 보여줍니다.
3. 방문 시 참고사항
주변 경관: 묘소 뒤편으로 가야산의 부드러운 능선이 감싸고 있어 지형적 아름다움이 뛰어납니다.〇 보존 상태: 충청남도와 예산군에서 정기적으로 정비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인근에는 대원군이 지은 보덕사도 함께 둘러보실 수 있습니다.
남연군 묘는 한국 근대사의 물줄기를 바꾼 장소라는 점에서 교육적 가치도 매우 높습니다.

천하 제일 명당 남연군 묘 ,이대천자지지
오서산의 구체적인 명당과 관련된 지형적 특징
정만인이 말한 '만대영화지지(萬代榮華之地)'로서의 오서산은 풍수지리학적으로 매우 독특하고 강력한 지형적 특징을 갖추고 있습니다. 요청하신 대로 정중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1. 금산체(金山體)의 형상
오서산은 산의 모양이 종을 엎어놓은 듯하거나 바가지를 엎어놓은 것처럼 둥글고 풍만한 '금산체'의 형상을 띠고 있습니다.〇 풍수적 의미: 풍수에서 금(金)의 기운을 가진 산은 부유함과 고귀함을 상징합니다. 산세가 부드럽고 온화하며 덕이 느껴지는 지형으로, 이곳에 명당을 쓰면 재물이 끊이지 않고 인품이 훌륭한 자손이 대대로 이어진다고 봅니다.
2. 복오형(伏烏形) 명당
산의 이름인 '오서(烏棲)'는 까마귀가 깃든다는 뜻이지만, 지형적으로는'까마귀가 엎드려 있는 형국'인 복오형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〇 특징: 까마귀는 예로부터 삼족오처럼 태양의 상징이나 신령스러운 존재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영험한 기운이 마을이나 묘 자리를 포근하게 감싸 안고 있는 형세를 갖추고 있어 기운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3. 좌청룡 우백호의 완벽한 조화
오서산의 구체적인 명당지로 꼽히는 보령 청라동(청라면) 일대는 산줄기가 겹겹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 구조입니다.〇 환포(環抱): 청룡과 백호의 산줄기가 마치 팔을 벌려 품 안을 감싸듯 면밀하게 발달해 있습니다. 이런 지형은 바람을 막아주고 물을 모으는 '장풍득수'의 전형으로, 심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매우 안정된 명당의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4. 서해를 바라보는 조망과 수기(水氣)
서해안에서 가장 높은 산인 오서산은 정상에서 서해 바다를 한눈에 내려다봅니다.〇 재물의 상징: 풍수에서 '물'은 곧 '재물'을 의미합니다. 산 앞에서 드넓은 바다와 금강 줄기 등 물의 기운이 모이는 것을 조망할 수 있는 위치는 큰 부를 얻을 수 있는 길지로 평가받습니다.
5. 천장지비(天藏地秘)의 터
정만인은 이 자리를 "하늘이 감추고 땅이 비밀로 한 자리"라고 표현했습니다.〇 의미: 너무나 큰 명당이라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으며,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기운을 보존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오서산 곳곳에는 이 명당을 찾으려는 수많은 무덤이 들어서 있지만, 정작 정만인이 가리킨 '진혈(진짜 명당점)'이 어디인지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어 신비감을 더합니다.
필자는 등산을 좋아해서 오서산과 가야산을 함께 다녀 왔지만 오서산이 가야산 보다는 큰 부드러움으로 덕산(德山)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서산은 가을이면 은빛 억새가 장관을 이루는 곳이기도 합니다. 명당의 기운을 느끼며 직접 그 지형을 확인해 보고 싶으시다면, 보령 청라면 쪽 코스로 등반해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남연군묘(南延君墓) 비석의 내용
충청남도 기념물 제80호인 남연군 묘에는 그의 생애와 가문의 내력을 기록한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비석의 주요 내용과 특징을 정리해 드립니다.
남연군묘(南延君墓) 비석의 내용 |
1. 비석의 명칭과 건립
〇 비명: 유조선국현록대부남연군겸오위도총부총관장무공시영희신도비 (有朝鮮國顯祿大夫南延君兼五衛都總府總管壯武公諡榮僖神道碑)
〇 건립 시기: 1865년(고종 2년)에 세워졌습니다. 아들인 고종이 왕위에 오른 뒤,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주도하여 가문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건립되었습니다.
2. 주요 기록 내용
비석에는 남연군 이구(李球, 1788~1836)에 대한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〇 가계 기록: 남연군이 본래 인조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의 후손이었으나, 순조의 명으로 영조의 손자인 은신군의 양자로 입적되어 왕실의 직계 계보에 합류하게 된 과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〇 생애와 관직: 그가 역임했던 주요 관직(현록대부, 오위도총부 총관 등)과 평소의 성품, 그리고 조정에서 수행했던 역할들을 찬양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〇 시호: 그에게 내려진 시호인 '영희(榮僖)'에 대한 설명과 그 공덕을 기리는 문장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3. 비문 찬술자 (글을 지은 사람)
이 비석의 글은 당시 영의정이었던 조두순(趙斗淳)이 지었으며, 글씨는 형조판서 등을 지낸 당대의 서예가 이정응(李正應)이 썼습니다. 이는 당시 권력의 정점에 있던 인물들이 참여했음을 보여줍니다.
4. 외형적 특징
귀부와 이수: 비석을 받치고 있는 거북이 모양의 받침달(귀부)과 비석 머리에 조각된 용 문양(이수)이 매우 정교하고 웅장합니다. 이는 왕의 아버지가 잠든 묘역으로서의 권위를 상징합니다.
〇 보존 상태: 비문은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 있어 당시의 기록을 확인하는 데 중요한 사료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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