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慶州 南山 茸長寺谷 三層石塔)과 불두 없는 여래좌상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慶州 南山 茸長寺谷 三層石塔)

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 (慶州 南山 茸長寺谷 石造如來坐像)

1,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慶州 南山 茸長寺谷 三層石塔)

아래 사진 속 석탑은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慶州 南山 茸長寺谷 三層石塔)으로, 대한민국 보물 제186호로 지정된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입니다.
상당한 높이의 계곡위 능선에 우둑 선 석탑 위에 머리(불두)가 없는 여래 좌상이 올려진 독특하고 아름다운 탑과 불상입니다. 탑과 불상은 각각 보물 제186호와 보물 제18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慶州 南山 茸長寺谷 三層石塔),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 (慶州 南山 茸長寺谷 石造如來坐像)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慶州 南山 茸長寺谷 三層石塔),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 (慶州 南山 茸長寺谷 石造如來坐像)


✓ 주요 정보위치: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 용장사 옛 절터에 있습니다.
✓ 특징: 일반적인 신라시대 석탑과 달리 자연 암반을 기단부(基壇部)로 삼아 그 위에 세워진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신라인들이 남산을 불국토(佛國土)로 여겼던 신앙관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 역사: 이 절터는 조선시대 학자 김시습이 머물면서 『금오신화』를 집필한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 높이: 해발 400m가 넘는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체 높이는 4.5m입니다.
경주 남산에는 이 탑 외에도 많은 불교 유적들이 흩어져 있어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리기도 하는데요. 다른 남산의 문화재들에 대해서도 더 알아보고 싶으신가요?

이 불상은 경주 남산 옛 용장사터에 위치한 삼층석탑형 대좌 위에 놓여 있습니다.
원래 불상의 머리 부분은 없어졌으며, 현재는 몸체와 대좌만 남아 있습니다.
전체 높이는 4.56m이며, 불상 자체의 높이는 1.41m입니다.


매월당 김시습이 이곳 용장사터에 머물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인 《금오신화》를 저술했다고 전해지는 곳입니다.

2,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 (慶州 南山 茸長寺谷 石造如來坐像)

사진 속 불상은 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慶州 南山 茸長寺谷 石造如來坐像)으로, 대한민국 보물 제187호로 지정된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입니다.

✓ 주요 특징독특한 대좌: 일반적인 불상과 달리, 둥근 세 개의 단으로 이루어져 탑처럼 보이는 독특한 형태의 대좌(臺座, 부처가 앉아 있는 자리) 위에 모셔져 있습니다. 이러한 형태는 전 세계적으로 유일한 양식으로 평가받습니다.
✓ 사실적인 표현: 불상의 머리 부분은 현재 없어졌지만, 남아 있는 손과 몸체 일부는 신체의 볼륨이 과장되지 않고 실제 승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8세기 중엽 석굴암 불상 등에서 보이는 특징과 유사합니다.
✓ 수인: 오른손을 오른쪽 무릎 위에, 왼손을 왼쪽 무릎 위에 자연스럽게 올려놓은 특이한 수인(手印, 부처의 손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 역사적 배경: 이 불상이 있는 용장사 터는 신라의 고승 대현이 염불할 때 불상도 함께 머리를 돌렸다는 설화가 전해지며, 조선시대 학자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집필한 장소로도 유명합니다.
이 불상은 경주 남산 전역에서도 손꼽히는 큰 사찰이었던 용장사의 옛 터를 내려다보는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의 머리(불두)가 없는이유?


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의 머리(불두)가 없는 정확한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불두 실전 배경 및 추정발견 당시 상태: 이 불상은 1923년 봄에 대좌에서 굴러떨어진 상태로 발견되었고, 그 해 11월에 다시 세워졌을 때 이미 목 부분이 부러져 있었습니다. 즉, 1920년대 초에 이미 불두가 없어진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됩니다.


✓ 인위적인 훼손 추정: 대좌와 불상이 누군가에 의해 분해되었고, 불상의 목 또한 예리하게 절단되어 있었다는 기록이 있어 인위적인 훼손 가능성이 높게 추정됩니다. 불두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훼손 당시 어딘가에 따로 묻혔거나 완전히 파괴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일반적인 이유: 경주 남산에는 이 불상 외에도 머리 없는 불상이 다수 존재하는데, 이는 조선시대 억불숭유 정책에 의한 훼손, 일제강점기 반출, 도굴, 또는 자연재해 등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여겨집니다.
이 불상의 머리는 아직 발견되지 않아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없음이 안타까운 점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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